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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의 숙박시설

     

    호텔이 등장한지는 200여 년밖에 안되었지만 숙박시설은 인간의 이동, 여행과 동시에 발생하였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숙박 기능을 보고 기원을 찾는다면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폼페이의 유적에도 여인숙으로 추정되는 아치형의 건물형태가 남아 있으며 함무라비법전(고대 바빌로니아)에는 여인숙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재정한 내용이 남아 있다.

    고대 이집트에는 식민지와 중앙 정부간의 교류를 위해 공무로 방문하는 손님을 맞이한 출영소가 도시 및 도로에 설립되기도 하였고 종교적 목적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은 여행을 하였다.

    그리스시대는 올림피아에서 개최된 고대 올림픽에 참가하는 목적과 주로 신전참배를 위한 종교적 목적으로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 그리스시대에는 상업적인 숙박시설이 발달되지 못해서 여행자들은 성지의 신전이나 민박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지만 로마시대부터 화폐경제의 발전과 교통수단, 도로망의 발달로 인해 숙박시설이 번창하게 되고 여행이 더욱 활발해지게 되었다.  또한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한 무역의 대유행은 대상들의 이동을 서두르게 하였고 지방에서 공물, 조세 등을 거두는 일을 하는 관직인 사자가 머무르기 위한 여관이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각 지역의 특산물을 사거나 파는 상인인 캐러밴들의 루트를 따라 여관이 지어지게 되었다.

     

    중세의 숙박시설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맞이한 암흑시대라고 불렸던 약 1000년동안은 많은 도로와 숙박시설이 황폐화되었는데 물물교환이나 교역을 위한 지역 간의 이동마저도 극히 제한된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근검절약과 조물주에 대한 봉사와 기도만이 강조되어 경제활동이 쇠퇴하였고 세속적인 향락은 금기시되었다. 종교가 모든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가치관 전반에 영향력을 미쳤기때문이다.  상인과 군인 종교순례자의 여행에 있어서도 편리함과 안락함의 추구는 없어지게 되었다.

    암흑시대라는 여행의 침체기에도 종교순례자, 군인, 상인과 호기심많은 소수의 일반인들은 이동이 가능했는데 그 중에 순례여행자들은 여행을 통해 신앙심을 불어넣으려하였다. 그들은 성지를 중심으로 하여 종교여행을 갔는데 숙박장소는 수도원 및 교회 아니면 도로변의 간이숙박시설이었다. 수도원은 많은 여행자, 환자, 순례자를 수용하기 위해 당시의 수도원은 순례자뿐만 아니라 일반 여행자에게도 시설을 개방하게되었고 이 과정에서 별도의 숙박시설을 지었는데 이것을 제너더카이엄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종교세력의 기세가 전보다 못하게됨과 더불어 수도원의 숙박시설도 12세기 무렵에서는 그 수가 줄어들게 되었고 식민지 개척 위한 해상여행 증가, 십자군의 원정, 대상들의 대규모 이동 등으로 여행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게 되었고 수도원의 일부는 재산상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으로서의 숙박시설로 발전되고 전환하게 되었다.

     

    근대의 숙박시설 

     

    1.유럽

    14세기경부터 배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개척하고 무역과 탐험을 하던 시기인 대항해와 문예부흥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나게 되었고 신대륙의 발견은 유럽중심의 세계관을 변화시켰으며 신대륙에 지중해 중심의 무역을 확대시킴으로써 상업적 여행이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16세기 초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17세기에 들어와 귀족들에게까지 장기간 순회여행을 확산시키게 된 그랜드 투어가 생기게되었다.

     

    그리고 페더호텔이라는 17세기 영국의 호텔이 생겨난 후 호텔이라는 단어가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에는 인 길드라는 중세기 말에 생긴 여관이 발전하였고 그 여관의 숫자도 많아서 여행하기 쉬워짐으로써 여행에 큰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인 길드는 여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조건은 음식 및 수면, 재산과 생명 등의 보호에 관련된 사항만을 제공하였고 현대적인 호텔에 비교하면 시설이 매우 빈약하였지만 18세기에는 여행의 증가에 따라 1774년에 코벤트 가든에 있는 아처경의 농가에 First Family Hotel을 데비드 로가 개관함으로써 현대적인 호텔 모형이 나타나게 되었다.

    호텔의 기업형태로서의 출현은  영국의 산업혁명을 계기로 한 시대적 요청의 현상이라고 하겠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국내,국외의 다양한 곳의 원료공급, 시장유통을 위한 상인들의 상거래 및 교류가 활발해지고 농촌에 살던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면서 기차, 기선 등의 교통기관이 발전되어 여행을 쉽게 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부터 지금까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숙박시설이 요구되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새로운 사상이 생기면서 정치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왕정은 공화정으로 바뀌게되었고 귀족세력의 점차적인 붕괴현상이 일어나게 되면서 귀족세력의 힘이 약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귀족세력의 사교모임 장소가 궁정에서 밖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그들의 새로운 사교장이 호텔이 된 것이다. 새로운 사교장이 된 호텔은 귀족세력의 감성에 맞추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호화성과 사회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요리, 직원의 복장, 서비스방법, 건물의 외관과 내장, 가구 등이 귀족세력의 요청에 맞춰 호화롭게 발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독일의 호텔}

     

    독일의 호텔은 1807년 온천휴양도시라고 불리는 바덴바덴에 설립된 바디셰 호프로인해 근대적 호텔이 등장하였다.

    이 호텔은 건물의 규모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컸고 초기의 여관과는 달리 건축구조도 호화스러운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냉수와 온수 또한 공급되고 정원이 마련되어 있었고 내부시설은 크고작은 침실 및 욕실, 응접실, 발코니, 식당 등이 잘 정비되어 있어 현대호텔의 초기적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바디셰 호프는 여관에서 호텔로 넘어가는 매개체로 평가받기도 했으며 1874년에는 베를린에 카이저호프가 문을 열게 되었고 2년 뒤인 1876년에는 프랑크푸르터 호프가 개관되었다.

     

     

     

     

    출처 - 김미경,신정하,서정모,장각현(2020). 최신호텔경영실무. 백산출판사